삼한은 삼국 시대 이전에 한반도 중남부에 있던 정치집단으로 마한, 진한, 변한을 가리킵니다. BC 3세기부터 한반도 중남부 지방에는 청동기 문화를 기반으로 한 여러 정치 집단이 성장했는데 그 중 세력이 강한 여러 읍락들을 통합하여 하나의 소국을 형성했습니다. 마한 54국, 진한 12국, 변한 12국 등 모두 70여 개의 소국이 삼한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각 소국은 세력이 강하고 정치와 경제의 주도권을 지닌 국읍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국읍에는 정치 우루머리가 있어 백성을 다스렸는데 이들은 세력의 크기에 따라 신지, 험측, 번예, 살해, 읍차 등으로 불렸습니다.
사람들은 농사르 지어 거둔 곡식이나 잘 자란 가축, 좋은 비단 등이 있으면 신지나 읍차에게 선물하곤 했고, 마한, 진한, 변한은 서로 돕기도 하고 경쟁도 하면서 균형 있는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물자도 나누어쓰고, 농사를 도우며 함께 잔치를 벌이기도 했는데 땅이 기름지고 사람들의 심성이 순박하여 서로 돕고 살면서 평화로움을 오랫동안 이어나갔습니다.
삼한에서는 1년에 두 번씩 계절 축제가 열렸습니다. 파종을 마친 5월에 한번, 추수가 끝난 10월 한번 백성들이 축제를 열고 하늘에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삼한은 고조선과는 달리 정치와 종교가 엄격하게 분리되어 있었던게 특징입니다. 종교나 제사를 담당하는 하는 사람을 천군이라고 불렀는데 당시 신지나 읍차도 천군에게는 함부로 하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의 인식 속에 천국은 하늘과 인간세상을 연결시키는 존재였고, 백성의 기도를 하늘에 전해주고, 하늘의 뜻을 백성에게 전해주는 메신저였습니다. 이 천군이 사는 곳은 소도라고 불리는 작은 마을로 삼한에 속해 있는 소국들은 모두 소도라는 마을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소도는 사람이 함부로 침입할 수없어 혹시 죄인이 이곳으로 도망치면 잡으러 들어가지 못하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이젠 판단은 천군의 몫인데 천군이 모든 죄인들을 다 받아주는 건 아니었습니다.
삼한에서는 벼농사가 발달하여 저수지를 많이 만들었는데 그 중 김제의 벽골제, 상주의 공검지, 제천의 의림지 등이 유명합니다. 또 힘든 일을 마을 사람들이 서로 도우며 했던 ‘두레’라는 풍습이 있었고, 여인들 사이에서는 삼, 누에고치, 모시, 목화 등의 섬유 원료로 베, 명주, 모시, 무명 등을 짜내는 길쌈두레도 성행했습니다.
이런 삼한에도 순장의 풍습이 있었는데 사람이 아닌 소나 말을 함께 묻었습니다. 또한 큰 새의 깃털을 함께 묻으면 죽은 사람이 하늘로 올라갈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3세기에 접어들면서 맹주국들을 중심으로 소국연맹체가 형성되었습니다. 경주의 사로국을 중심으로 한 진한 연맹체, 목지국을 중심으로 한 마한 연맹체, 김해의 구야국을 중심으로 한 변한 연맹체가 그것입니다. 그 뒤 마한은 한강 유역의 백제국이 중심이 되어 백제로, 진한은 경주 지역의 사로국이 중심이 되어 신라로 발전합니다. 하지만 변한은 고대 국가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가야연맹체 단계에 머물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