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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deo [구르미 그린 달빛]의 박보검(효명)을 보고 슬퍼해야 하는 이유2편(사람ing 정준호 대표)

Ca sỹ: 더깊이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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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ô Tả

순조는 세자를 정말로 아꼈습니다. 세자가 장성해 갈수록 중요한 행사를 항상 동행시켰습니다. 그런데 순조 27년 2월 효명세자에게 대리청정을 한다는 비망기를 내립니다. 이때 순조의 나이가 겨우 38살입니다. 그런데 어제 경종 이야기 할 때 숙종이 경종에게 대리청정 맡겼을 때 아무도 반대하지 않아서 이상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본래는 신하들이 예의상으로도 반대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지 않았습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경조에게 꼬투리를 잡기 위한 궁요지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순조가 대리청정을 하겠다는데 신하들이 별로 반대를 안하는 것입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번은 숙종때와는 완전히 상황이 다릅니다. 우선 순조는 아들을 정말로 사랑하고 아꼈습니다. 아들이 정치를 잘하고, 권력이 집중되고, 칭찬받는 것을 질투하지도 않았습니다.


선조같은 경우는 자기 아들 광해군에게 대리청정을 맡기고 광해군이 인기가 많아지고 칭찬을 받으니까 얼마나 시기하고 미워했는지 모릅니다. 권력은 부모와 자식도 나눌 수 없다는 것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순조와 효명세자의 대리청정 모습은 매우 보기 힘든 좋은 모습입니다. 이렇게 효명세자가 19살 때 대리청정을 시작합니다. 지금 박보검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 세자가 보통이 아닙니다. 대리청정 의식을 치루는 당일부터 행차 할 때 약간의 문제가 생기니까 그 담당자에게 그 책임을 묻고, 강화유수의 행랑들이 민간에 문제를 일으켰는데 강화유수(종이품, 중장, 대법원 검사장)가 제대로 처리하지 않았다고 바로 삭직하고, 형조참판(종이품) 과 좌포도대장까지 파직해 버립니다. 시작하자마자 강단있게 일을 합니다. 그러니까 기강 해이해져 있던 조정의 바짝 긴장하게 됩니다.


세자는 순조가 몸이 아파서 신하들에게 많은 부분 정치를 위임해서 권력이 너무 한쪽에 집중되어 있고, 조정의 기강이 크게 해이해져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처럼 문제를 피해가거나 돌려 말하지 않고 거침없이 정사를 폈습니다.
심지어 서자의 등용문제에 대해서 구체적인 방침까지 내렸습니다. 서자는 첩의 자식입니다. 정실부인이 아닌 여인에게서 태어나면 다 서자입니다. 그런데 여인의 신분이 천민인 경우는 서얼이라고 불렀습니다. 서자건 서얼이건 조선시대 벼슬길이 막혀있었고, 차별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오랜시간 해결안된 문제입니다. 그런데 세자가 대리청정을 하면서 이런 예민하고 민감한 분제까지 적극적으로 정사를 펼친겁니다. 굉장히 파격적인 행보입니다.
대리청정을 시작한지 한 해가 지나고부터는 대부분의 고위직 인사까지 직접 단행했습니다. 심지어 정승까지도 직접 임명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국무총리와 부총리격입니다. 순조도 전적으로 아들에게 권한을 위임한 겁니다. 아마 이대로 시간이 계속 흘렀다면 조선왕실의 역사가 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대리청정을 시작한 지 몇 달만에 원손도 태어났습니다. 모든게 안정되어 갔고 세조도 만족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세자가 각혈을 하게 됩니다 연일 어의들이 진찰하고 탕약을 올렸는데 병세가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어 갔고, 어의만으로 안되니까 신하들이 의학에 능하다고 알려진 정약용을 부르라고 주청까지 올립니다. 굉장히 다급한 상황인 겁니다. 그런데 정약용을 부르러 가기도 전에 순조 30년 5월, 세자가 희정당에서 겨우 22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합니다.


이때 순조가 얼마나 괴로워하고 슬퍼했는지 모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있는 부분을 같이 한번 보겠습니다.


빈궁에 나아가 별전을 행하였다. 친제 제문에,


"아! 하늘에서 너를 빼앗아감이 어찌 그렇게도 빠른가? 앞으로 네가 상제를 잘 섬길 것이라고 여겨서 그런 것인가, 장차 우리 나라를 두드려서 망하게 하려고 그러는 것인가, 아니면 착하지 못하고 어질지 못하며 덕스럽지 못하여 신명에게 죄를 얻어 혹독한 처벌이 먼저 윤사에게 미쳐서 그런 것인가? 내가 장차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허물하며 어디에 의지하고 어디에 호소할까? 말을 하려고 하면 기운이 먼저 맺히고 생각을 하려고 하면 마음이 먼저 막히며 곡을 하려고 하면 소리가 먼저 목이 메니, 천하와 고금에 혹시라도 국가를 소유하고서 나의 정경(情景)과 같은 자가 있겠는가?


슬프고 슬프다. 내가 눈으로 네 얼굴을 보지 못하고 귀로 네 음성을 듣지 못한 지 이미 60일이 지나고 두 절서가 바뀌었다. 그런데 너는 아직까지 잠이 들어 아침도 없고 저녁도 없이 명명하고 막막하기만 한 것인가, 아니면 내가 미련하여 참으면서 먹고 호흡하기를 태연히 하며 유유 범범하게 여겨서인가? 네가 정말로 알고 있는가 모르는가, 내가 과연 바야흐로 꿈을 꾸면서 깨지 않고 있는가? 네가 정말로 훌쩍 떠나버렸는가, 아니면 네가 장차 벌떡 일어나 돌아올 것인가? 부모·처자의 은혜가 여기에 있고 종묘사직의 중대함이 여기에 있으며 성궐과 궁전의 거처가 여기에 있는데, 가기는 어디로 가며 가서는 누구와 친할 것인가?


해와 달은 그 운행이 변함이 없고 한 해가 가고 한 해가 오는 그 까닭도 변함이 없으며, 하늘은 높고 땅이 두터운 그 지극함도 변함이 없는데, 돌아온다는 기약은 언제이며 기약은 누구와 같이 알겠는가? 천하의 슬픔 가운데 어버이와 떨어져 있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는데, 네가 성효하면서 3년 동안 어버이 품에서 사랑받은 것을 생각지 아니하고 어찌 이와 같이 근심이 없을 수 있겠으며, 천하의 슬픔 가운데 자식이 없는 것보다 더 심한 것이 없는데, 나의 기구하고 험한 운명으로 갑자기 네 가지 곤궁한 것에서 첫번째 입장이 되었으니, 어찌 이와 같이 독하게 하는가? 슬프고 슬프다.


옛날 내가 10살 겨우 넘어서 황고를 여의었는데 어렵고 큰 기업이 산처럼 자신을 누르는 듯하였으며 자신의 외로움과 나라의 위태로움이 마치 아침 저녁을 보전하지 못할 듯하였지만, 1, 2년 지나면서 많은 백성들 위에서 의탁할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무엇이 있어서이겠는가? 특별히 황천과 조종께서 말없이 도와주신 힘뿐이었다. 그러다가 네가 태어나면서부터 내 마음에 즐거움은 남의 아비가 되는 데 그칠 뿐만이 아니고 나라의 근본이 튼튼해져 황고와 열성의 유업을 의뢰하여 펼칠 수 있어서였다. 네가 또 이미 관례를 치루고 이미 장가를 들어 또한 이미 자식을 두었는데, 어질고 효성스러우며 총명하고 타고난 자질이 일찍 성취가 되었으므로, 마침내 내가하던 정치를 섭행하게 하였더니, 팔방에서 〈백성들이〉 목을 빼어 ‘은나라 때의 치도를 다시 창성하게 할 수 있으며, 주나라 때의 천명을 새롭게 할 수 있다.’고들 하였으니, 어찌 나 한 마음의 즐거움이며 한 몸의 경사라고 말하겠는가? 자못 천하 국가에서 드물게 있고 드물게 보는 일이었기에 내가 망령되이 근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믿었었는데, 하루아침에 재앙을 내려 만사가 기왓장처럼 깨어질 줄을 누가 생각이나 하였으랴? 종팽에 대한 우려와 나 자신에 대한 슬픔이 도리어 황고를 여의고 네가 태어나기 전보다 더 심함이 있다고나 할까. 슬프고 슬프다.


너의 청명하고 수미한 자질과 길선하고 상화한 기질은 하늘에서 태어나게 한 바가 쉽지 않은데, 그것을 꺾어버리는 데 이르러서는 갑자기 위급한 병에 걸린데다 또 괴잡한 증세가 겹쳐 물이 흘러간 구덩이 같고 불에 타고 남은 재와 같으니, 이치의 믿기 어려움이 어찌 더 갑작스러울 수 없을 정도로 빨랐는가? 어떻게 이른바 비자의 책임은 하늘에 달려 있다는 것인가? 진실인가 거짓인가? 누구를 좇아서 바로잡겠으며, 귀신의 짓인가, 사람의 짓인가? 누가 이를 주장하는가? 슬프고 슬프다. 고고(呱呱)하게 우는 세손이 장차 할아버지를 아비같이 여길 터이며, 근심스러운 나의 여생은 장차 나라를 운명으로 삼아야 할 것인가? 네가 혹시라도 앎이 있다면 나의 이 말을 듣고서 틀림없이 저승과 이승 사이에서 얼굴을 가리고 억울해 할 것이다. 지금 나의 슬픔은 너로 인한 슬픔일 뿐만이 아니고 나의 어질지 못하고 덕스럽지 못하여 죄를 자신에게 쌓아 나의 훌륭한 자식을 잘 보전하지 못하여 4백 년의 종묘 사직으로 하여금 위태롭기가 하나의 털끝 같지만 어떻게 할 수 없음을 슬퍼하는 것이니, 오히려 다시 무슨 말을 하겠는가? 슬프고 슬프다. 아! 애통하도다."


하였다.


순조실록 31권, 순조 30년 7월 12일 정묘 1번째기사 1830년 청 도광(道光) 10년

효명이 죽고 순조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정사를 돌봐야 했습니다. 그런데 2년뒤 5월에 아끼던 복온공주가 죽고, 6월에는 명온공주까지 죽습니다.(드라마 ‘명은’) 안그래도 쇠약해진 몸인데 슬픔을 감당하기 힘들던 순조는 순조 34년 11월 경희궁 회상전에서 4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순조가 죽기 2년 전에 안동김씨 김조순이 먼저 죽었습니다. 드라마에서는 어떻게 그려지는지 잘 모르겠지만 김조순은 순조시대 최고 실력자임에는 분명했지만 매우 겸손했던 인물입니다. 왕의 장인이었기 때문에 당연직인 영돈령부사 이외에 어떤 관직도 받지 않았던 인물입니다. 안동김씨의 세도 60년이 바로 김조순에게서부터 시작되는데 그 후손들의 처신은 김조순과는 매우 달랐습니다.
순조 이후 헌종이 즉위하면서 풍양조씨가 권력을 장악했지만 헌종이 후사 없이 죽가 다시 안동김씨가 권력을 잡아 철종을 재위에 앉혔습니다. 그러면서 조선은 소위 세도정치로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순조 이후 헌종, 철종때가 아시아의 운명이 결정되는 순간입니다.
이때 중국에서는 제1차 아편 전쟁(1839년 ~ 1842년), 제2차 아편 전쟁(1856년 ~ 1860년)이 있었습니다.
일본에서는 1854년 미국화 화친조약을 맺었고, 1867년 메이지 천황이 등극했습니다. 일본이 1854년전까지만 해도 우리보다 그렇게 앞섰던 나라가 아닙니다. 일본의 갑작스러운 성장, 일본의 비약적인 도약은 바로 우리 나라 헌종(15년)과 철종(15년)때 30년입니다.


그래서 효명세자의 죽음이 더욱 안타까운 겁니다. 그런 포부가 있던 세자가 죽지않고 30년 이상 정치하면서 왕실을 튼튼히 하고, 외국의 변화에 주목하여 개방하고 나라를 발전시켰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아마 지금과는 우리는 전혀 다른 근대사를 살았을 것입니다.
[구르미] 종방을 앞두고 우리가 슬퍼해야 할 진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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